DNA가 결정하는 것과 내가 결정하는 것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많은 것을 부여받는다.
체형, 체질, 회복 속도,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성 같은 요소들은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결정된다. DNA는 분명 출발선을 만든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에 가깝다.
찜질방에서 본 아버지와 아들들의 모습은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체형이 닮아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유전적 영향의 결과처럼 보였다. DNA가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 영향도 없다고 말하기에는 현실의 장면들이 너무 분명했다.
DNA가 결정하는 영역
DNA는 결과를 직접 결정한다기보다, 조건의 범위를 정한다.
같은 노력을 해도 어떤 사람은 빠르게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체중, 근육량, 피로 회복, 스트레스 반응처럼 일상적인 영역에서도 그 차이는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비교는 쉽게 왜곡된다.
모든 결과를 동일한 노력의 문제로 환원하면, 설명되지 않는 좌절이 남는다. DNA는 공정하지 않다. 출발선은 같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내가 가진 조건에 대한 인식
나는 내가 유리한 DNA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더 많은 반복과 시간이 필요한 쪽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 인식은 자책이라기보다는, 현실에 대한 판단에 가깝다.
출발선이 다르다면 과정이 같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나에게는 의식적인 선택과 관리가 되어야 한다. 이 차이를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삶을 설계하기에는 정확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하여
열등한 DNA를 가졌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각오나 다짐보다는 조건에 대한 계산에 가깝다. 같은 결과를 원한다면, 투입해야 할 시간과 반복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감정적인 분투가 아니다.
버티는 의지나 자기계발식 열정이 아니라, 방향이 정해진 반복이다.
어디에 시간을 쓰고, 무엇을 줄이며, 어떤 선택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에 가깝다.
내가 결정하는 영역
DNA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위에 무엇을 쌓을지는 선택의 문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DNA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입력한다. 생활 습관, 사고 방식, 선택의 누적은 모두 몸과 삶에 기록된다.
이 기록은 다시 다음 선택의 조건이 된다.
단기간에는 미미해 보이지만, 시간이 쌓이면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DNA가 설계도라면, 삶은 그 설계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운용 기록에 가깝다.
결정과 책임의 경계
중요한 것은 경계를 혼동하지 않는 일이다.
DNA가 결정하는 영역까지 스스로의 책임으로 떠안으면 불필요한 좌절이 생긴다. 반대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까지 유전 탓으로 돌리면 삶은 정체된다.
불리한 조건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조건을 기준으로 삶을 설계하는 것.
그 지점에서 비로소 노력은 의미를 갖는다.
정리하며
DNA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DNA로 어떤 삶을 기록할지는 여전히 나의 선택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체념이 아니라 기준이다.
앞으로 DNA가 어떤 정보를 기억하게 될지는,
그것만큼은 살아가는 동안 내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